오웰은 용감한 사나이였다. 그가 ‘동물농장’을 쓸 때는 지식인 그 누구도 소련을 욕하지 않았다 한다. 아돌프 히틀러의 파시즘과 싸우는 소련은 그 때 같은 편이어서란다. 그런데 오웰은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워서인지 이에 개의치 않았단다. 나쁜 놈은 우리편이든 남의 편이든 언제든 때려야 한다는게 오웰의 생각이었다. 43년에 쓰기 시작해서 44년초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출판사도 이 책을 출판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항상 그렇다. 적(enemy)를 때리는 것은 '식은 죽 먹듯' 쉽다. 그렇지만 같은 편을 때리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잘못하면 '따' 당하니까 말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 맘속에 있는 적은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고 해서 때리기는 더 어렵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이쁘다는데, 지것은 미운지 모르는게 인간이다. 오웰은 그런 점에서 그 시대의 눈치만 보는 지식인들과 달랐다.
1903년 태어나서 50년 1월 죽었으니 오래 살지는 못했다. 옥스브리지는 못나왔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한다. 고등학교만 명문인 이튼을 나왔다 한다. 이튼을 나왔으니 적당하게 탱자탱자 살려고 맘먹으면, 한평생 뒹글뒹글 살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잘하지못하는 공부는 일찌기 포기하고, 18살 어린 나이에 식민지 버마 경찰 고위직이 되었단다. 당시 버마인구 1300만명이었는데 오웰을 포함한 약 90명의 영국인 경찰간부가 현지인 경찰 1만 3천명을 졸떼기로 데리고 있었다 한다.
멋모르고 제국의 주구(走狗)로서 첫걸음을 걸었지만, 조금 지나서 후회했단다. 아버지가 인도의 아편국에 근무한 제국주의자여서 선택은 했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렇게 살기에는 뒤꼭지가 캥켰었던게 오웰이었다. 맘 속에 양심이란게, 자신을 엄청나게 불편하게 했었던것 같다. 경찰로 일하면서 냄새나는 감방 안에 갇혀있는 버마인 죄수들, 그들의 두들겨 맞아서 시퍼렇게 멍든 엉덩이를 쳐다보면서 견딜 수없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한다.
그래서 27년 24살 때 '누리고 누리던' 식민지 총독부 순사 생활을 청산하고 버마를 떠났다 한다. 첫 출발은 제국주의자였지만, 그 뒤로는 끝없는 반골로서의 삶,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반전체주의자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된다.
출신자체는 노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사고와 행태는 노동자와 가까웠다고 한다. 버마를 떠나고 난 뒤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자로서 참전하기전까진 파리와 런던의 빈민굴에서 밑바닥 생활을 했었다 한다. 뭐할라고? 그랬는지는 모르겄다. 전생에 노동자아님 노숙자 아니었다 싶다. 어쨌던 그런 시절의 경험이 문학적으로 응축된게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란 르포라 한다. 얼마 전 재산이 4천억에 달한다는 키아느 리브스라는 <매트릭스>란 영화에 나온 멋있는 친구가 집 없이 노숙자같이 산다고 그러더만, 그런 과에 속하는 친구가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나도 내꿈이 '거지 왕자', '왕자 거지'였다
45년 8윌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출간한 동물농장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고, 이에 뒤이어 48년 쓴 ‘1984’란 디스토피아 소설 역시 인기를 얻음으로써 문학에서 그의 이름은 불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말년에는 복이 있다 그럴까. 그런데 그것은 문학적 성과였고, 다음 그 다음 해인 50년 1월에 50도 못넘기고 죽었으니 소설가론 성공했을지언정, 그 사람 개인으론 우울한 삶이다. 죽기 얼마 전에 새로이 결혼까지 했더만, 마누라는 행운인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동물농장'의 번역은 엄청 일찍 이루어졌단다. 왜냐고? 동물농장이 공산주의를 풍자하는 소설이어서, 오웰을 반공투사인 작가로 알려져서란다. 그래서 45년 8월에 나온 책이, 우리에게는 48년에 번역이 이루어졌다. 또 48년 나왔던 ‘1984’도 1953년 전쟁 통에 번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보다 그 옛날 그 시절에 한국 사람들은 오웰을 더 많이 읽지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반공주의자라는 것은 엄청난 오해였단다. 오웰은 버마를 떠나면서부터 사회주의자였고, 그래서 스페인 내전에도 뛰어들었다고 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뼈속깊이 사회주의자였단다. 그렇다면 동물농장에서 풍자하고 있는 소비에트 연방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나 싶다. 거기의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스탈린 동지는 오웰의 눈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새까만' 독재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나 싶다.
오웰이 동물농장을 쓰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주제는 어떻게 자유를 누리고자 억압을 벗어나 해방을 꿈꾸던 사람들이 더 큰 억압과 부자유속으로 들어가느냐이다. 괴물(monster)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또 다른 괴물의 지배하에 들어가는지 말이다. 나도 궁금하다. 어떻게해야?,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안되는지를 말이다. 어쨌던 이에 대해서 아무리 동물농장을 읽어봐도 답이 나올것같지는 않다. 우리 마음 속에 '나폴레옹' 같은 애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으로 밖에는 말이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에서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계약을 촉구하는 인간들을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책에서 내놓고 '홉스'를 욕하지만 내심으로 칼끝은 자유주의자 '로크'를 향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루소의 이야기다. 부자들은 “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고 우리 모두에게 소유를 보장하기 위해 단결하자" 고 촉구한단다.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지켜서 , 어느 쪽도 차별하지 않고 강자와 약자를 평등하게 서로의 의무에 따르게 하는 규칙을 제정하고 (중략) 모든 성원을 보호하고 지켜주며,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영원히 우리를 단합시키는 권력에 집중시키자'고 선동한단다. 그러면 사람들은 바보같이 속아서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의 쇠사슬을 향해 달려갔다" 고 한단다.
이렇게 부자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지킬 재산도 자유도 없는 빈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우고 목에는 굴레를 두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전의 사기계약을 철회하고 다시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해서 '사회계약론'을 썼다고 한다. 루소가 인간불평등 기원을 쓴게 1755년이다. 그 뒤 100년도 안된 1848년 마르크스가 유럽에서 하나의 유령이 출몰한다면서 '공산당 선언'이란 팜프렛을 쓴다. 또 다시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서 전 세계의 동물들이 단결해서 인간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동물농장'을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그 귀결이 오웰이 쓴 '동물농장'이었다.
허망하다.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단결해서 싸우자는 그들의 약속은 언제듯 혁명이 성공하는 순간 버려진다. 부르조아들은 혁명의 과정에서 농민과 도시빈민을 동지로 대하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난 뒤 그들이 경제적 자유를 주장하자 바로 배신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란 종이조각에 쓰여진 자유일 뿐이다. 다시 '복서'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사악한 착취자인 부르조아를 내쫒고 또 다시 혁명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혁명은 다시 배신당한다. 돼지들은 노동자인 동물을 다시 배신하고 그들이 쫒아낸 사악한 인간들을 열심히 닮아간다는게 오웰의 생각이다.
난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존 레논이 불렀던 '이메진'의 세계는 우리 인류에게는 언감생심(言敢生心), "어찌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충직하고 성실했던 복서는 개고생을 다하고 난뒤 도살장으로 실려가고, 돼지 나폴레옹은 다시 이웃 농장의 사악한 인간들과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인간의 바닥을 다 본 마키아벨리처럼 차악(lesser evil)의 세계를 그려보는게 우리에게는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아님 에이브럼 링컨처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게 말이다. 그런데 조지 오웰은 뭔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어떻게해야 나폴레옹같은 돼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알려주지를 않고 말이다. 알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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