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라는 작품이 있다.영화를 봤냐고? 그건 아니고! 지난 번에 학술 저널을 발간하고 싶은 국제학교 학생들에게 제호를 맘에 드는 것을 찾아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부담스러웠는지 아무도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어제는 애들을 모아놓고 더 이상 멋있는 제호를 찾지말고 1900년대 초반에 러시아 지식인 집단에서 있었던 논쟁의 제목, 'vekhi'라는 타이틀로 당분간 발간하자고 애들에게 제안을 했다.
제호를 이렇게 정하자, 그 제호를 둘러싼 논란이 떠올랐는데, 나는 이 vekhi에 관한 논쟁에 대한 글을 82년에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80년 광주, 그 이후의 대학가는 '혁명의 기운'(?)이 이글이글 거렸는데, . 나중에 하바드 대학의 역사학자가 되는 테다 스코치폴이란 듣보잡의 박사학위논문 '혁명의 비교연구'도 쓰자마자 바로 출판사 까치에서 번역이 이루어졌던 것도 그 때의 그러한 상황에서 였다.
이 때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그 때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있었던 김학준이 쓴 '러시아혁명사'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책이 1955년 Bertram D. Wolfe의 'Three who made a Revolution'을 통째로 배꼇다고 했지만, 그 때 학생들이 왜, 김학준의 그책을 많이 읽었겠는가?
더 이상 시위를 통한 우리의 요구로서는 이 사회를 더 이상 바뀔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어서이지 않나 싶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광주같이 처절하게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제는 정부의 전복을 꾀하는 말 그대로 혁명을 꿈꾸는 분위기. 그런 상황에 편승해서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다음해 82년인가 이렇게 훅 부풀어진 분위기에 바람빼고 싶었던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 교수가 vekhi 논쟁을 연세대 박영신 교수가 발간하였던 저널 '현상과 인식'에 소개했던 것이다. 소개한 주요 내용은 러시아 볼세비키들의 작태?에 대한 비판을 주로 다루었었는데, 비판의 골자는 러시아 볼세비키들이 윤리점수가 낮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들의 이론적 천박성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즉 공부도 안하는 운동권 애들이 도덕적으로도 타락했다는 것을 지적했었던 것 같다.
맑스를 추종하는 레닌주의자?로서 볼세비키에 대한 러시아 리버럴들의 반발이지 않았나싶다. 물론 그 때에 그것을 소개하려는 이인호 교수의 생각이야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 그분이 나중에 걸어간 행로를 보았을 때 말이다. 소련과 수교하고 모스크바 주재 러시아 대사를 한것은 전공적합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가, 한국방송공사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보여준 보수적 태도는 그분이 하바드 대학 최초의 여성 박사학위자로서의 리버럴일까라는 생각도 의문스러워서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을 가진 단어를 제호의 타이틀로서 삼고자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vekhi'라는 말은 영어로는' landmark', 한국말로 '방향표지'로 번역을 한다는데, 항상 갈 길을 못찾는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방향표지도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지금이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애들에게 당분간 이 타이틀로 저널을 발간하다가, 길이 보이면 '전진'이나 이런 멋있는 제목으로 제호를 다시 붙이던지 해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이인호 교수가 82년에 'vekhi'로 운동권 바람을 빼려던 그때의 시도는 잘못되었고, 지금에는 'vekhi' 로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옳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하늘의 별빛을 쫒아서 주욱 따라가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별이 안보이네!